- 8월 15일까지 부산을 점령하라"…그 야욕을 꺾은 다부동 전투
- 고지 하나를 하루에 15번 뺏고 빼앗긴 그 여름 — 다부동을 기억합니까
- 대한민국이 살아남은 이유, 경북 칠곡 다부동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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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호국보훈의 달 — 대한민국을 지켜낸 그 이름, 다부동
6월이 되면 한 번쯤은 멈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지금 이 평범한 일상을 살 수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누군가의 목숨이 그 자리를 채웠다는 것을.
오늘은 그 이름을 불러보려 한다.
다부동. 절체절명의 위기, 1950년 여름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전쟁이 시작됐다. 불과 3일 만에 서울이 함락됐고, 7월 5일 오산에서 미군마저 격파당한 뒤 7월 24일 대전, 7월 말에는 목포와 진주, 8월 초에는 김천과 포항까지 함락됐다. 한반도 전체가 공산화될 것처럼 보이던 그 여름, 마지막 방어선이 하나 남아 있었다. 낙동강이었다
김일성은 7월 20일 수안보까지 직접 내려와 "8월 15일까지 반드시 부산을 점령하라"고 독촉했다. 부산마저 빼앗기면 대한민국은 끝이었다. 그 최후의 방어선 한복판에 경북 칠곡군 가산면, 다부동이 있었다.
지켜야만 했던 땅 — 국군 제1사단의 사투
북한군은 1950년 8월, 임시 수도 부산과 대구로 통하는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해 5개 사단 중 제1·제13·제15사단과 제105전차사단을 대구 축선에 집중시켰다. 압도적인 병력이었다.
이에 맞선 것은 백선엽 준장이 이끄는 국군 제1사단과 미군 2개 연대였다. 전투는 1950년 8월 3일부터 29일까지, 수암산과 유학산 일대에서 처절하게 이어졌다
고지의 주인은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었다. 12일 동안 고지의 주인이 15번 바뀌는 시산혈하(屍山血河)의 대혈전이었다. 탄약이 떨어지면 몸으로, 무기가 없으면 수류탄으로, 그것도 없으면 육탄으로 싸웠다. 험준한 암벽을 맨손으로 오르며 9회에 걸친 백병전 끝에 유학산을 탈환하기도 했다 이 전투에 대한민국 국군·학도병·노무자를 포함해 약 2만여 명이 참가해 1만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열 명 중 다섯 명이 돌아오지 못한 것이다.
버텨낸 것이 역사가 됐다
B-29 폭격기 98대가 왜관 서북쪽 일대에 960톤의 폭탄을 투하하는 융단폭격이 이어졌고, 다부동 계곡에서는 6·25전쟁 최초의 전차전이 벌어졌다. 철갑탄이 어둠 속을 날아다니는 그 계곡을, 당시 미군 장병들은 '볼링장 전투'라고 불렀다. 그렇게 버텼다. 국군 제1사단은 북한군 3개 사단의 집요한 공격에도 방어선을 확보하고 대구로 향하는 접근로를 지켜 대구 고수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동양의 베르됭 전투'라고도 불리는 이 전투의 승리가 있었기에, 그해 9월 인천상륙작전이 가능했고, 반격의 불씨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 만약 낙동강 방어선에서 국군과 유엔군이 북한군을 막지 못했다면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6월,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들
그들은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저 자기 뒤에 있는 것들—가족, 마을, 나라—을 지키고 싶었을 뿐이다. 그 마음이 쌓여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자리가 됐다. 6월 호국보훈의 달, 다부동의 이름을 한 번만이라도 마음에 새겨보자. 기억하는 것이 우리가 그들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작고도 가장 큰 예의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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